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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을 함께 가기로 한 친구는 ‘착각의늪방콕녀’다. 이 친구와는 청계산, 관악산 등을 함께 다녔었다. 그렇다고 내가 등산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저 친구들이 산에 간다길래 아무 생각없이 따라간 것 뿐이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건 오히려 착각의늪방콕녀다. 그녀는 제주여행을 한라산만 바라보고 왔다고 해도 좋을정도였다. 

이번 한라산 등반도 별 생각없이 따라간 거 반, 그대로 한 번은 올라야하지 않겠냐는 마음이 반이었다. 사실 전자가 훨씬 더 컸다. 

한라산은 올라가야하는 시간이 정해져있다. 이를테면 성판악 코스로 올라갈 때 진달래밭 대피소는 최소 1시 전에 통과해야하고 정상은 2시 30분까지는 올라야한다. 그런고로 우린 다른 친구들이 자고 있는 시간에 일어나 전날 미리 사다둔 3분카레에 밥을 비벼먹었다. 사실 별로 땡기진 않았으나 ‘생존’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 배고픈 데 산을 오를 순 없어! 그리고 얼려둔 물 1통과 그냥 물 1통, 초콜릿 바 따위를 주섬주섬 넣었다. 또 전날 비가 왔기 때문에 혹시 몰라 판초도 챙겼다. 

친구는 관음사 코스로 가자했다. 그 쪽이 경치가 더 좋다며. 숙소에서 관음사 탐방로 입구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미리 양해를 구해 숙소 사장님께서 아침에 차를 태워주시기로 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관음사 코스를 잘 모르셨던 거 같다. 그 분은 한라산 등반을 세 번이나 하셨다는데 매번 성판악 쪽으로 가셨던 모양이다. 우리를 내려주신 관음사엔 아무리 찾아봐도 한라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없었다. 게다가 안개 낀 관음사엔 사람도 없었다. -.-; 




아무튼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여서 그 쪽으로 걸어가봤는데... 막다른 곳이 나오데. 이건 뭔가싶어 지도앱 켜고 찾아보아도 주변엔 관음사 뿐... 어쩔 수 있나, 우린 관음사에 들려보기로 했다. 누군가 있기를 바라며... 절이니까 아침 일찍 오신 분도 있을거야... 

근데 관음사가 진짜 멋지더라. 안개가 껴서 더 신비롭게 보인 것 같다. 정신놓고 바라보다가 한 건물에 사람의 그림자를 본 것 같아 그 쪽으로 가봤다. 그 분은 한라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여기가 아니라고, 관음사 야영장 쪽으로 가야한다고... 




순간 당황했다. 관음사 야영장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거길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 하지만 지도앱은 우리에게 멀리 않은 곳에 그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충분히 걸어갈 수 있어 기뻤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이라니. 관음사 탐방로 쪽으로는 정상에 오를 수 없었다. 우리는 결정을 해야했다. 그럼에도 관음사 코스로 오를 것이냐, 아니면 택시를 타고 성팍악 탐방로 입구로 가볼 것이냐. 주차장 관리하시는 분은 콜택시 번호를 가르쳐주시며 이 시간에 택시 잡기 어려울거라 했다. 하지만 도전! 별 거 아닌 것에 심각하게 도전하는 이 정신은 뭔지... 어쨌든 도전했고 콜택시는 잡혔다. 꺄호!!

관음사 야영장에서 성판악 탐방로 입구까지 택시비는 2만 5천원이었던 거 같다. 쑈를 하며 성판악 탐방로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무려 9시. 우린 1시간 이상을 헤매고 돌아다닌 거였다. 





난 등산초보다. 그런데 한라산 높이는 1950m. 올라가야하는 길이는 9.6km. 그런데 초반에는 ‘이정도면 올라갈만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올라갈 수록 돌의 크기는 커지고 경사는 높아졌다. 주변경치? 웃기지마라다. 앞만 보고 걸어도 돌 때문에 발목 꺽일까 걱정이었는데... 그래서 사진이 하나도 없다. 

속밭, 샘터에서 모두 쉬며 물 마시고 초콜릿바 먹고... 오로지 진달래밭 대피소의 라면만 바라보고 올라갔다. 진짜 욕나오더라. 마구마구 화가났다. 당시엔 왜 내가 한라산을 오르며 화를 내고 있는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한참 지난 후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한라산 안에서 어쩌지 못하는 속절없는 나 때문에 화가 난 것이었다. 더 자세한 건 패스. 쿨럭. 


겨우겨우 12시 20분쯤에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고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아 꿀맛. 
더 자세한 후기는 [ 여기] 를 클릭하시라. 내 두번 째 블로그 '국수가 좋아'다. 




대피소에선 1시 전엔 출발하라고 어떤 분이 안내해주었고 잠시 쉬었다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친구는 정상에 아이스크림을 팔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하지만 한라산이 청계산도 아니고... 있을리가??


정상에 거의 다 왔을 때야 사진을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왜? 거긴 엄청 경사진 계단이 있었고 가다 쉬다를 반복해야했다. 쉬면서 사진도 찍고. 





그리고 결국 정상에 올랐다. 우리를 반겨주는 건 엄청난 벌레 떼들. 눈, 코, 입으로 들어가고 난리도 아니였다. 그래도 한 10분 남겨놓고 도착했나? 등산초보인 나는 2시 30분까지 못 올라갈까봐 진짜 걱정했다. 이렇게까지 악을 쓰며 올라왔는데 정상을 코 앞에 두고 내려가야했다면 울었을지도... 





정상에선 또 다시 하산해야할 시간이라고 안내방송이 울렸다. 아쒸, 아침에 1시간 넘게 헤매지만 않았다면 훨씬 여유있게 둘러보고 즐겼을텐데... 덤앤더머같은 우리탓이지 뭐. 그래도 백록담을 봐서 기뻤다.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 못 보고 내려가는 사람들도 많다지? 냐하하! 참, 한라산 정상엔 친구가 원했던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는다. 당연하겠지! ^^ 




내려가는데 아까까진 멀쩡했던 저 곳이 안개가 쫙~~ 올라올 땐 내려갈 때 사진 찍어야지 생각했는데 산에서는 이쁘다 싶을 때 바로 사진을 찍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변화무쌍한 날씨.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 더 화가났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하나 명확했다. 올라가는 건 포기할 수 있지만 내려가는 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거. 그러면서 죽어도 해야할 일이라면 내려올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올라가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일단 올라가면 어떻게든 내려오려할테니까. 그 후의 휴유증은 별도지만. 

내려오는 길엔 물도 떨어져 목마름에 배고픔에 땀 범벅에 피곤함에... 

그리고 마침내 4-1로 표지판과 만났다. 요게 입구에서 가장 첫 번째로 만나는 표시판이다. 




그렇게 마음 속의 욕이 난무한 가운데 장장 9시간의 한라산 등반이 끝났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등산하지 않기로. 낮은 제주의 오름정도는 모를까 그보다 높은 애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에 갔다왔으니 이제 등산을 포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비겁한거지만 해봤으니까 괜찮은거야. 쿨럭. 




성판악 탐방로 주차장. 한라산 잘 있어~ 이젠 멀리서 바라만볼께~ =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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