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2010년 전에는 나의 가족은 4인 가족이었다. '적어도'라는 낱말을 굳이 붙인 이유는 2010년 이후에 오랫동안 지병을 앓던 엄마가 돌아가셨고 그 후로 나의 가족은 각자 독립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은 이러하다. 우선 우리 네 식구가 있고 외가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었다. 친가 쪽에는 할머니만 계셨다. 물론 할아버지도 계셨겠지만 아빠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고 하니 내겐 존재감이 없는 분이다. 제사 때나 사진으로 뵈었을 뿐. 우리는 서울에 살았고 외가는 경상북도 어디 쯤에 있는 진짜 시골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마을이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어느 집에서 소소하게 물건을 떼다 파는 진짜 구멍가게가 있었다. 음식인문학 -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외가는 농사를 지었고 우..
먼저 은 저자인 주영하 교수가 1999년 이후 학회지나 연구논문집에 발표한 글들을 수정, 보완한 내용이다. 하지만 학회지나 연구논문집에 실릴 글들은 뭔가 어려울 것 같고 글자는 한글이로되 뜻은 알 수 없는 그런 글일 거라 생각하고 겁을 좀 먹었지만 읽어보니 생각보다 쉽게 풀이되어 있었다. 물론, 뒤로 갈 수록 어려워질지도 모르고 아님 나같은 독자를 위해서 수정, 보완을 하면서 더 쉽게 읽을 수 있게도 한 것이 아닐까도 싶다. 음식인문학 -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무엇보다 주영하 교수는 서설에서 '음식학'에 대한 주장을 펼쳤는데 나 또한 그 의견에 동의한다. 내가 어설프지만 경제학을 배워야할 것 같아 방송대에 경제학과를 다닐까 고민했던 이유도, 역사를 공부해야지~ 라고 마음을 먹고 '비교세계사' 한 권(만..
짜장면에 대한 히스토리를 찾은 적이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전쟁 후 미국으로부터 밀가루 원조를 받게 되면서 밀가루가 한반도에 퍼져 밀가루 음식이 유행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짜장면은 그 보다 훨씬 전인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미 인천 쪽에서 노동자들에게 팔리고 있었다. 어떻게? 그 전이라면 한국에선 밀가루가 귀했을텐데? 검색을 하다가 찾아낸 자료가 바로 주영하 씨의 칼럼이었다. 어느 신문에서 연재를 하고 있는 듯 했는데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밀 재배를 좀 했던 모양이었고 수입도 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는 밀이 어느정도는 대중화되었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들을 꽤나 차분하면서도 조리있게 이야기해주는 글이 참 인상 깊었다. 그래서 짜장면은 제쳐두고 '주영하'라는 사람에 대해 검색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