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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의 기원을 공부하다가, 밀에 대해 알고 싶어져서 이곳 저곳 자료를 찾아보다가는 급기야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가게 되었다. 이유인즉슨, <인사이트 아시아 : 누들로드>에서는 초기 유럽인들이 지금의 '신장 위구루 자치구'에서 국수를 먹은 흔적을 남겼는데 그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기원전 400년쯤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 시기가 어느 시기일까가 궁금했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었겠지만 대략적으로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6,000년 경부터 기원전 1,500년이라고 하며 청동기시대는 '청동기시대의 설정'에 반대하는 학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하여 그 시기가 대략적이라도 나와있지가 않았다. [ 이유 보기


그렇다 하더라도 철기시대가 대략 기원전 300년 경부터 서기 300년쯤 된다고 하니, 국수의 유물은 철기시대 쯤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석기 시대에 대한 다큐를 본 것은 혹시라도 '밀'에 대한 단서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하지만 '역사스페셜'이다보니 한반도와 일본에 한정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고 당시 한반도에선 기장, 조 등의 곡물이 재배되었던 모양이었다. 


아, 물론 밀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기원전 7,000년 경에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도 신석기 시대에 가까운 것 같아 신석기 시대가 궁금했다.   



[역사스페셜] 신석기인들, 바다를 건너다



우선 이 다큐를 보고, 왜 신석기인들을 그동안 우매하게 그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의 우리들과 비슷한 영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단순하게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토기, 간석기 등의 도구들이 그 당시의 혁명이었던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환경을 아주 잘 활용하여 문명을 발달시켰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도 축척되어 온 문명을 잘 활용하여 발달시켜가고 있는 단계가 아니던가. 


신석기인들은 4-5인이 탈 수 있는 통나무 배를 만들어 일본에 가서 물물교환을 하였고 그들의 기술을 전파시켰다. 이런 대단한 일의 뒤에는 간석기의 발명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간석기는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든 것으로 요즘에도 사용하는 도구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역사스페셜] 신석기인들, 바다를 건너다



학생 때는 '아,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들어 썼구나. 그냥 돌도끼 들고 다니는 원시인이네 뭐.' 이렇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날카로움을 간직한 이 간석기를 활용해 신석기인들은 고래를 잡았고 거대한 나무를 깎고 속을 파 내어 통나무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기까지 했다. 위 사진은 신석기 시대의 간석기를 복원한 모습이다. 



[역사스페셜] 신석기인들, 바다를 건너다


[역사스페셜] 신석기인들, 바다를 건너다



그리고 일일이 나무의 속을 힘으로 파내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파내어 그 안에 불을 피워 태웠다. 


불은 나무의 속을 태웠고 재를 남겼다. 이 재는 손쉽게 떼어낼 수 있는 형태의 물질이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배를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기간은 약 6개월정도 걸렸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현대의 도구로 배를 만드는 데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통나무배를 실제 조정선수들인 학생들이 타봤는데 작은 배가 운항하기엔 좋지 않은 바람과 파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석기인들은 이 배를 타고 대마도는 물론, 일본의 규슈에까지 갔던 것이다. 

이는 대마도에서 발굴된 신석기 유물 중의 하나인 '고라니 이빨'로 증명되었다. 고라니는 한반도에만 서식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또한 투박조개팔찌라는 유물도 뒷받침하고 있다. 투박조개 역시 대마도에서는 서식하지 않는 어패류라고 한다. 부산 동산동에서 발견된 투박조개팔찌는 제작기법이 대마도에서 발견된 투박조개팔찌와 동일한 것으로 추정됐다. 

재미있는 건 동산동에서 발견된 투박조개팔찌가 무려 1,500여점이었다는 것이다. 학자는 이를 물물교환을 목적으로 대량생산을 했던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한반도의 신석기인들이 고래잡이를 할 때 사용하던 작살 중엔 흑요석을 활용한 작살이 등장하고 있었는데 이 흑요석은 부산과 남해안 일대에는 없는 돌이라고 한다. 분석을 해본 결과 구석기 때의 홍천에서 발견된 흑요석과는 달리 한반도 산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의문은 일본의 규슈 고시타케의 흑요석에서 풀렸다. 고시타케는 일본의 3대 흑요석 산지로 신석기 시대의 석기 제작공장으로 통한다고 한다. 그 지역의 풀숲에 나뒹굴고 있는 돌이 모두 흑요석이었다. 그 중에서 무작위로 골라 성분을 분석한 결과 동삼동의 흑요석과 동일한 것으로 판명됐다. 아마, 한반도의 신석기인들은 투박조개팔찌와 이 흑요석을 물물교환했을지도 모른다.
 

[역사스페셜] 신석기인들, 바다를 건너다



투박조개팔찌를 보고 나는 웃음이 났다. '조개 껍질 가운데를 뚫은 팔찌잖아?' 그래도 당시의 도구로는 상당한 세공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인정!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빗살무늬토기'도 그렇다. 학생 때는 '음… 그렇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사실 시험문제로 자주 출제되곤 했었다) 토기를 제작했다는 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였다. 조, 기장 등을 저장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음식을 조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송에선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지역의 진흙으로 신석기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토기를 구워 그 토기에 물을 끓이고 조개를 넣어 조개탕을 시도해봤고, 조를 넣어 끓여보았다. 그랬더니 훌륭하게 조개탕이 되었고 조밥이 되었다. 이는 불에 직접 굽는 조리법밖에 없었던 구석기와 달리 끓이고 삶고 찌는 다양한 요리가 가능해졌다는 걸 의미하고 있었다. 


[역사스페셜] 신석기인들, 바다를 건너다



정말 놀라웠다. 신석기인들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였다. TV 등에선 정말 원숭이보다 조금 더 진화한 정도의 인간형상으로만 나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신석기인들은 지금의 우리들보다 덜 떨어진(?) 사람들이었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 조상님에 사죄하는 바이다. 


"죄송합니다. 실제로는 저보다 훨씬 훨씬 훨씬 스마트하셨어요!"


<역사스페셜>에선 이 신석기인들의 이야기 전에 구석기인들의 모습도 방영했던 것 같다. 그 역시 구해서 봐야겠다. 구석기인들은 또 얼마나 나에게 놀라움을 전해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국역사의 이해>를 읽고 있는데 거기에도 신석기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신석기 시대는 혈연중심의 씨족사회였다는 걸 우리들은 학교에서 배웠다. 시간이 흐를 수록 여러 씨족이 뭉친 씨족연합이 등장했고, 하나의 씨족이 다른 씨족들을 통합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서서히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국역사의 이해

저자
김종박 지음
출판사
호산당 | 2007-03-2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21세기는 동북아의 시대이다. 더구나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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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과정에서 지배집단들은 그들의, 일종의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부모와 자식 간에는 효를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는 충을 강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이게 중화사상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었다. 당시의 가진 자도 지금과 똑같이 대를 이어 그 권력을 이어가기 위해서 미리 손을 썼던 것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그게 현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을 보니 정말로 개천에서 용 나는 건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일인 듯 싶다. 


어쨌거나, 다시 '밀' 재배를 언제부터 어떻게 어디에서 했는지 좀 더 자료를 뒤져봐야겠다. 


아,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역사스페셜>을 직접 보시길.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있다. 고래잡이부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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